신구 박근형 두 배우가 그려 낸 고도를 기다리며

신구님과 박근형님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가 다시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이 연극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으로,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작은 1953년 1월 5일 파리의 바빌론 극장(Théâtre de Babylone)에서 초연되었으며, 2명의 주연 배우와 3명의 조연에 의해 2시간 이상에 걸쳐 공연됩니다. 이 작품은 존재의 의미와 존재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요 주제로 다뤄집니다. 두 명의 주인공들이 무언가를 기다리며 부조리한 상황과 대화를 통해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인간의 존재와 무의미한 삶에 대한 의문과 불확실성을 다루며, 관객을 깊은 생각과 고찰로 이끄는 작품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 줄거리

줄거리를 말하기 전에 여기서 고도는 높은 위치가 아니라 극 중 인물의 이름입니다. 연극은 두 남자 블라디미르(박근형)와 에스트라공(신구)이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작품은 2시간 내내 주인공들이 고도를 기다리면서 일어나는 대화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도를 본 적도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고도가 그들을 만나기를 원하는지도,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립니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고도가 존재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런 가운데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을 이유로 그 날도 그 다음날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연극과는 달리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클라이막스도 없습니다. 2시간 이상의 공연 속에서 그 둘의 대화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전부입니다. 심지어 두 주인공끼리 나누는 대화조차 엉뚱한 동문서답 식입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어느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피상적입니다. 둘만의 대화로 공연을 이어가던 중 포조(김학철)와 그의 짐꾼 럭키(박정자)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새로운 인물과 주인공들의 대화 역시 두서가 없고 무의미합니다. 밤이 되자 양치기 소년이 등장하여 그들에게 ‘고도 씨는 내일 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음 날도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가 반복되고 극의 마지막에 다시 양치기 소년이 등장하여 고도의 방문에 대해 결말을 내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양치기 소년과도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결국 블라디미르는 양치기 소년을 화 내며 쫓아버리고, 자다 깬 에스트라공은 고도가 왔었는지 묻습니다. 그는 더 이상 고도를 기다리지 말고 멀리 떠나자고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항상 정해진 말처럼 내일 고도를 만나러 여기 와야 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둘은 나무를 쳐다보며 목이나 매고 죽을까 하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끈이 없다는 이유로 내일 끈을 챙겨와 고도가 안 오면 나무에 줄을 매자고 약속합니다. 갑작스런 이 이야기는 앞뒤 상황과 맞지 않지만 그들은 계속 즉흥적인 이야기를 이어가고, 둘은 떠나자고 얘기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연극은 끝이 납니다.

부조리 극 고도를 기다리며

부조리는 불합리·모순·불가해 등을 뜻하는 용어로서, 철학에서는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의미입니다. 부조리 극은 문학이나 연극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인간 사회의 모순 된 상황과 불평등, 비인간적인 행동 등을 다루는 작품을 가리킵니다. 부조리 극 작품은 인간들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순되고 불평등한 사건이나 인간의 약점과 잘못된 가치관을 비판하고자 합니다.또한 부조리 극은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정치적인 사건을 반영하여 현실의 어둡고 추악한 면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부조리 극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하게 해주면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부조리 극의 한 예인 소설 “1984”는 조지 오웰이 쓴 글로 권력 남용과 개인 자유를 통제하는 사회를 그려냈습니다. 그의 글은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를 그려내어 독자에게 오히려 독재적인 체제에 대한 비판과 개인의 자유권 수호의 중요성을 전달 합니다. 부조리 극은 현실의 어두운 면을 들어내고 인간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높여 줍니다. 부조리 극의 이런 정의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에서 극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극 내내 어떠한 중대한 사건도 없이,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이 등장하여 이름 빼고는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것이 이 연극의 줄거리 전부입니다. 주인공 둘은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고도”라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며, 그가 찾아 올 것 인가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채 일방적으로 기다림 만을 계속 합니다. 어떠한 클라이막스도 없이 이 작품은 기다리기만 계속 하다가 끝이 납니다. 그 둘의 대사는 의미 없는 말장난이 뿐이며, 연극이 끝날 때까지 어떤 의미도 없는 대화들만 나눕니다. 에스트라공(고고)은 극 시작부터 누군가에게 맞아 얼굴에 상처와 멍이 든 채 등장하고, 블라디미르(디디)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자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대화는 부조리극 등장 이전의 극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을 파괴하는 전개를 보여주는 것으로 얻어맞은 에스트라공(고고)에겐 자신의 과거가 없었기에 왜 자신의 얼굴이 그렇게 됐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관심조차 없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가 없기에 과거의 미래인 현재도 없고, 현재가 없기에 미래 시간도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부조리극은 1950년대 말 유럽의 극작가들에 의해 시도된 부조리 물을 상연한 연극들입니다. 부조리 극은 실존주의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미와 목적도 없다고 보고 인간의 모든 소통이 무너질 때 일어나는 모습들을 표현합니다. 이 작품에서도 존재하는지 의문이 드는 고도라는 인간의 존재처럼 인간 존재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부조리 극이 이러한 문제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부조리 극들은 염세주의와 기이한 유머가 독특하게 섞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등장인물

  • 블라디미르 (디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다리를 벌려 종종 걸음으로 걷다’라고 하여 ‘디디’라고 불립니다. 희곡에는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관습적으로 이 극 중에서 블라디미르는 키가 크고 홀쭉하고 에스트라공은 땅딸막한 이미지로 연출됩니다. 지적이고 말이 많은 성격으로 고도라는 사람이 올 것이라고 믿는 낙천주의자입니다.

  • 에스트라공 (고고)

이 극의 두 주인공 중 나머지 명은 ‘고고’라고 불립니다. 누더기 옷에 모자를 쓴 고고는 블라디미르와는 반대로 단순하고 감정적인 비관론자로, 어제 일어난 일이나 만났던 사람 등에 대해서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발 사이즈가 맞지 않는 신발 때문에 힘들어 하며 그것 때문인지 다리를 절며 연기합니다. 이 연극은 그의 대사로 시작하는 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그의 명대사는 연극 중 계속 반복됩니다.

  • 포조

지주 역할로 짐꾼 럭키와 함께 등장합니다. 권위적인 그의 성격으로 럭키를 노예 부리듯이 합니다. 잔인한 그의 성격을 보여 주 듯이 그는 럭키를 목줄로 끌고 다닙니다.

  • 럭키

포조의 짐꾼이지만 노예 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포조의 지시에 무조건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포조가 ‘생각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동안 말이 없던 그는 명령에 따르기 위해서 무작위 단어로 이루어진 의미 없는 말들을 내뱉습니다.

  • 양치기 소년

‘고도’의 심부름꾼인 양치기 소년은 1막과 2막 후반부에 등장하여 고도라는 사람이 언제 올 지를 알려 줍니다.

  • 고도

두 주인공이 항상 기다리고 있는 인물로 실제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나타나는 것이 두 주인공의 존재 이유인 것처럼 그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반복적으로 언급되어 두 주인공에게 기다림의 당위성을 만들어 줍니다.

5. 후기

이 극 전반에서 들려주는 애매 모호한 표현들은 연극의 내용이 무엇이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한 줄로 정의 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특히 고도라는 사람의 정체는 점점 궁금증을 자아 냅니다. 왜 알지도 못하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들의 생각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지만 결국 아무 관계가 없는 두 주인공과 고도의 관계 이야기는 허무함을 만들어 냅니다. 이 작품은 부정적인 현실에 대해 낙관적인 대답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디에서든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하며, 내일이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희망을 표현합니다. 작품은 끝없는 희망의 고문을 표현하며,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상황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질문합니다. 이 작품은 고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으면서, 고도가 무슨 존재인지를 정의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자극합니다.